남산둘레길
토요일 아침부터 봄비다운 봄비가 추적추적 내립니다.
일요일에는 동문산악회 고려산행이 있지만, 처남 환갑이라 참석도 못하고...
그렇다고 소중한(?) 주말을 빈둥빈둥 보내기가 아쉬워서, 남산둘레길과 경리단 길을 다녀왔습니다.
제 유년시절 추억이 많이 담긴 남산입니다.
어린시절에는 장충단 공원서 베드민턴도 치면서 놀았고..
남산을 오르던 계단에서 엎어놓은 공기 세개로 행인들에게 야바위를 치던 야바위꾼 아저씨들 모습이 생각이 납니다.
군 제대 후 총각시절에는 데이트를 즐겼던 남산이였습니다.
그런 남산이 이제는 서울 시민의 대표적인 산책 코스로 변했습니다.
서울을 둘러싸고 있는 다른 산들에 비교해 높지 않아서 오르기도 편하고,
또한 접근성도 좋아서 많은 분들이 산책을 즐길 수 있는 남산입니다.
남산 둘레길은 총 5가지 코스로 나뉘어 있습니다.
북측순환로, 역사문화길, 자연생태길, 야생화원길, 산림숲길 다섯 가지 테마로 조성이 되였습니다.
회원역에 도착을 하니 11시 30분.. 눈에 익숙한 좁은 골목길을 따라서 채 5 분도 안 걸었는데, 길 건너에 남산공원이라는 커다란 입구 표지판이 보입니다. 오래 전 어린이회관입니다. 지금은 광진구 어린이대공원으로 옮긴걸로 알고 있습니다. 참, 오랜만에 보는 호텔입니다. 제 기억으로는 저 건물이 대우 건물 다음으로 크고 높았던 건물로 기억이 되는데.. 그냥 지나친다는게 너무 죄송스럽다는 생각이 듭니다. 잠시 안중근 의사 동상 앞에서 묵념을... 건립성금 기부자 명단에 일본 분들도 계십니다. 기념관을 나오니.. 저 멀리 남산타워가 보입니다. 습기로 렌즈를 닦고 다시 보니.. 남산타워가 사라졌습니다..ㅎ 잠시 쉬어갑니다... 옷을 좀 가볍게 입어서 그런지.. 한기가 듭니다. 가져 간 따듯한 커피를 마시면서 잠시 주변을 보니, 용산 시내가 한 눈에 들어옵니다. 용산... 아련한 중학교 시절 기억 하나가 떠 오릅니다. .. 아버지가 영화감독이셨던 짝궁 녀석의 책장에는 위인전이 많았습니다. 왕십리가 집이였던 저는, 남산을 거쳐서 용산 그 친구 집 까지 걸어갔습니다. 친구에게 빌린 위인전 몇 권을 가슴에 안고서... 집에가서 빨리 위인전을 읽을 마음으로 그 먼 길을 걸었던 기억이 납니다. 그런 저를 기특하다고 친구 어머님께서는 식빵도 챙겨 주시고 차비를 주셨지만, 저는 그 돈이 아까워서 걸어서 왔습니다. 그러고 보니 짧지않은 세월을 걸어왔네요... 그 친구도.. 친구의 어머니도 그리워집니다. 제 친구의 오래 전 집을 찾아 갈... 제 기억의 지도는 너무 낡고 흐려서 찾아 갈 수가 없습니다.. 과장된 표현인지는 모르지만, 남산이 품고있는 보석같은 둘레길이란 생각이 듭니다. 이 곳이 인위적으로 조성한 반딧불이 서식처라고 합니다. 어린 시절에는 개똥벌레라고 불렀던 기억이 납니다..ㅎ 둘레길을 걷다가 얼마전에 모 프로에서 본 경리단 길이 생각이 나서 예정에도 없었던 경리단 길을 들렸습니다. 이런 날은 우아하게 모처럼 분위기 잡고, 양식을 즐기는 것도 좋다는 생각이 들더군요..ㅎ 천천히 걸으면서 각 식당 메뉴판을 봐도 뭐가 뭔지 당췌 모르겠습니다..ㅎ 음... 제 나이에 이 경리단 길을 즐기기에는 뭔가 나사가 하나 빠진 듯..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듭니다. 슬슬 지치기도 하고 배도 고파서 용감하게 들어갔습니다. 물론 후회를 할 각오를 안고서... ㅎ 메뉴판 꼬부랑 글씨 밑에 깨알처럼 작은 글씨로 한글 설명은 있지만, 아무리 메뉴판을 봐도 뭔 음식인지 모르겠더군요. 얼마 전에 집에서 막둥이가 해 준 스파케티가 생각이 나서 주문한 스파케티 입니다. 음.. 제 주제를 알고는 있었지만, 역시 제 입맛에는 순대국이 .. ㅎ 그래도 아까워서 남기지 않고 다 먹었습니다. 커피 한잔 하면서 밖을 보니 막둥이 생각이 나더군요. 막둥이 녀석 시집을 보내기 전에.. 날 잡아서 막둥이 녀석을 데리고.. 오늘 이 코스를 다시 한번 와야겠구나...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. 남산 둘레길을 손잡고 걸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누고.. 막둥이가 좋아하는 스파케티도 사주고...